정당정치의 위기 - 2011/10/16 01:04
/일상
박원순의 등장은 한국 정당정치의 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이 아니겠느냐고 내가 물었다. 경제사회학 교수님과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정당정치가 위기에 빠지면 결국 그 사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고, 많은 경우 사회의 위기는 정당정치의 위기와 관련되어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개인주의의 등장과 함께 조직화된 힘이 약화되어 가는 중이고, 공동체 속에서 집합적으로 핵심 가치를 추구하는 동력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한국의 좌파는 미래지향적 가치를 발견하고 정교화하는 데 실패해온 것이 아니냐고 하셨다.
미국에서도 최근 수십 년에 걸쳐 조직화된 힘이 약화되어 왔음을 감안할 때, 정당정치의 위기를 개인주의의 등장과 관련지어 세계적 맥락 속에서 위치시키는 것은 적절한 진단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근래 미국 정치지형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랐다. 나는 이것을 ‘조직화된 자본’의 등장과 자본-정치-학문의 결속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교수님 말씀은 그것도 결국은 가치의 동맹이 아니냐는 것이다. 보수주의 운동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결국 어떠한 힘을 만들고 어떠한 기치 아래 모여 있는지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한국적 특수성에 더 주목해 보고 싶었다. 정당에 속하지 않은 채 출마하고 선거를 치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고, 최근에 민주당은 경기도지사, 김해을 그리고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를 내지 못하였다. 민주당은 약하며, 진보정당은 민주당의 대안이 되지 못했다.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들은 더 이상 정당을 조직하지 않고, 그 대신 정당정치의 바깥에 독자세력을 형성하면서 단일화를 요구한다. 현행 헌법과 제도 하에서 적합한 것은 결국 양당제뿐인데, 큰 정당 속에서 경선과 노선투쟁을 거치면서 진보개혁세력의 힘을 극대화하는 것이 가장 민주적이고도 합리적인 체제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김기식의 ‘빅텐트론’을 지지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야권연대는 민주적인 후보 경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조직된 큰 목소리를 내고 있지도 못하다. 10년에 걸친 진보정당 실험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민주당의 역량과 역사를 긍정하고, 대통합도 결국은 민주당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반한나라 비호남을 내세우는 제3세력은 호남지역주의를 영남의 패권적 지역주의와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이야기했다. 황태연은 97년 대선 전에 <지역주의의 나라>에서 호남을 비롯한 충청.강원 등 소외지역이 연합하여 영남패권주의를 역포위하는 그림을 그렸다. 민주당을 부정하며 제3세력을 자임하는 세력은 결국, 저항적 지역주의의 기반 위에서 가능했던 민주정부 10년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 왔다. 정당정치의 위기, 조직화된 힘의 중요성, 빅텐트론, 저항적 지역주의 등등 핵심 주제와 논거들에 대해 교수님과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고도 유시민과 박원순을 긍정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이 정도의 의견일치는 큰 수확이다.
한국을 움직이는 집단은 결국 경기고라는 것, 그들의 끈끈한 인적 네트워크가 어떻게 한국을 움직이는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들었다. 공적 영역의 사람들이 기업 등 사적 영역에 진출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대부분 부패의 사슬로 이어지는 것이 문제라고도 하셨다. Peter Evans의 embedded autonomy는 혁신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이상적인 개념이 아니냐, 라는 말씀도 있었다. 즐거운 토론이었다.


